대한민국 졸부·조폭 두목 ‘거지’ 만든 강원랜드 - ㉓강원랜드 VIP룸의 ‘전설’
카지노는 고객들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비즈니스 장소가 되거나 단순 도박장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18세기 유럽에서 귀족들의 고급 사교장으로 출발한 카지노는 이제 호텔을 비롯한 부대시설(레스토랑, 쇼핑센터, 컨벤션)은 물론 엔터테인먼트까지 갖춘 복합 카지노리조트(IR)로 진화하고 있다.
IR은 카지노의 본 고장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한 뒤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거쳐 일본으로 상륙 채비를 마쳤다.
▲현재의 하이원 호텔은 2000년 10월 28일 국내 최초의 내국인 출입카지노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강원랜드와 해외 유수의 카지노들은 게임을 즐기는 차원을 넘어 도박으로 승부를 걸려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카지노가 돈을 빨아먹는 ‘진공청소기’라는 비난을 듣는다.
하지만 마카오와 싱가포르 등지의 카지노들은 모두 한자로 오락장(娛樂場)이라는 표기를 하고 있다.
카지노가 ‘불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건전한’ 게임장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30년 이상 마카오 현지 경찰의 태권도 교관을 지낸 이동섭 마카오 한인회장이 전하는 마카오 카지노의 의미는 색다르다.
“40개 수준에 달하는 마카오 카지노들은 모두 오락장이지 도박장은 단 한 곳도 없다. 대한민국은 카지노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파탄, 자살 등 좋지 못한 이미지로 점철되고 있지만 마카오에서는 그런 일이 극히 드물다.
중국인들은 도박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마카오를 방문하는 중국인들은 오락차원의 게임을 하지 승부를 걸지는 않는다. 카지노 입구의 ‘오락장’이라는 표기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카지노 주변에 ‘돈’이 몰리다보니 늘 ‘주먹’(조폭)과 ‘여자’가 뒤따르기도 한다.
2000년 10월 28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백운산에 국내 최초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문을 열자 전국 각지에서 수표와 현찰을 들고 찾아온 고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루에 최소 수백, 수천억 원 이상의 판돈이 탄광촌 골짜기에 몰리면서 전국의 알아주는 주먹들이 사채업(꽁지)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강원랜드에 찾아들었다.
<2001년 1월 15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백운산 정상.
폭설과 영하 20도의 강추위도 개장 석 달째를 맞은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듯, 1800여 명(정원 700명)의 인파가 객장으로 운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오락의 수준을 넘은 ‘대박의 과욕’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고액 채무자의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이다.
소위 ‘꽁지’라 불리는 카지노의 사기꾼 ‘깡업자’들에게 모든 재산을 헐값에 털린 채 무일푼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영혼조차 담보로 저당 잡힌 듯 눈동자의 초점마저 흐려져 있었다.
이날 밤 10시 강원랜드 카지노 호텔의 1층 로비. 차림새로 봐서는 손님들로 보이지 않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카지노 객장과 붙어 있는 로비 응접실을 점거한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로비를 제집 삼아 드러누워 있거나 열심히 어디론가 전화를 해대는 사람들. 바로 깡업자 ‘꽁지’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카지노측의 깡업자 단속 조치 이후 카지노 객장에 들어오지 못한 채 로비에서 ‘사냥감’을 물색 중이었다.
카지노 안전요원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은 버젓이 로비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1년 1월 25일자에서>
초창기 강원랜드 VIP에는 돈이 넘쳐났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고객에게 사채를 빌려주는 꽁지(사채업자)가 카지노 개장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국의 유명한 조직폭력배는 물론 돈 많은 졸부와 지방의 갑부들까지 돈다발을 싸들고 강원랜드 VIP를 찾아 카지노를 즐겼다.
카지노에 돈이 흥청망청 넘치면서 강원랜드 주변에도 돈 인심이 후했다.
스몰카지노 시절, VIP 회원으로 출입했던 고객 박정철(가명)씨는 “강원랜드 일반 영업장에도 100만 원권 수표가 넘쳤지만 VIP룸에는 5000만 원이나 억대의 고액권 수표가 주로 사용되었다. 고객들이 딜러에게 팁으로 100만 원권 수표나 칩으로 팁을 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카지노에서 형님 동생 하는 사람을 만나면 역시 수백만 원씩 팁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이었다. 당시는 고객들이 서로 돈을 물 쓰듯 하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VIP를 출입한 고객들은 부동산으로 갑부가 된 졸부들을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신흥 갑부들이 현금과 수표를 바리바리 싸들고 강원랜드를 찾아왔다. 이들은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강원랜드 보안실에서 10여 년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 간부의 회고.
“부산에서 택시 수천 대를 굴리던 한 회장은 최소 1000억 원대 갑부로 알려졌다. 강원랜드가 개장하자 그는 현금 다발을 자가용에 가득 싣고 왔다.
호텔 방에 현찰을 가득 쌓아 놓고 며칠씩 게임을 즐기던 이 회장은 매너도 좋았고 품위를 지킨 신사로 기억되고 있다.
하루는 호텔 방에서 기다리다 지친 회장의 운전기사가 회장 몰래 100만 원권 지폐다발 10개(1000만 원)를 들고 카지노 일반 영업장에 갔다. 그 운전기사는 호기심에 바카라 게임을 하다 1000만 원을 몽땅 탕진하였다.
겁이 난 운전기사는 다시 1000만 원, 또 1000만 원 하면서 4000만 원 이상을 잃었다. 그날 밤 돈이 빈 사실을 확인한 이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돈이 왜 이렇게 부족하냐?’ 따졌다, 그러자 겁을 집어먹은 이 운전기사는 사실대로 고백하지 못하고 호텔 욕실에 들어가 자해소동을 펼쳤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는지 커터 칼로 손목 혈관 대신 살점 부위를 가볍게 찔러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회장은 이것을 보고 보안에게 신고를 하였다. 강원랜드 보안 요원들이 현장에 출동해서 파악한 결과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병원으로 옮겨 간단하게 치료를 받고 퇴원시켰다.
보안요원이 운전기사의 절도사건에 대해 경찰에 신고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회장은 자신의 카지노 출입문제가 회사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그냥 넘기자고 하는 바람에 사건화 되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스몰카지노부터 시작해 2003년 3월 메인카지노가 개장한 이후 약 1년가량 더 강원랜드를 찾아오다가는 아예 발길을 끊었다. 1000억 원대 재력가였던 부산택시회사 회장도 카지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카지노는 무슨 마력이 있어 교통오지로 알려진 강원도 첩첩산골로 돈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을까.
워커힐카지노에서 수십 년간 딜러로 활동하다가 강원랜드에 스카우트 된 한 팀장은 “카지노의 바카라는 가장 스릴 넘치는 게임이다. 테이블에서 카드를 천천히 들추는 묘미는 스카이다이버가 수천 미터 상공에서 점프를 하는 것보다 더 큰 스릴과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다.
한 끗 발 차이로 이기면서 느끼는 희열은 다른 어느 스포츠레저 활동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워커힐의 경우 과거 돈 많은 일본 야쿠자들이 자주 찾아와 게임을 즐겼다. 억대의 돈을 베팅하고 카드 패를 확인하는 야쿠자는 승부에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강원랜드가 개장했다는 소식이 연일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전해지자 수백억, 수천억 원대 재력을 갖고 있던 조폭들은 손이 근질근질해 안달이 났다.
특히나 평소 도박을 좋아하는 주먹들은 국가가 허가 해준 도박장인 강원랜드 카지노를 찾아 짜릿한 승부욕을 불사르는 새로운 재미에 빠져드는 것이다.
당시 억대의 수표를 챙겨 강원랜드에 드나든 대표적인 조폭들은 서울의 김동우(가명), 이근한(가명), 청주의 장만수(가명)등이 꼽힌다.
당시 돈 많은 조폭들은 아파트 재개발사업이나 호텔 나이트클럽 등에서 지배인 등으로 돈을 버는 조폭, 종교단체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조폭, 대도시 사창가의 조폭 등 다양한 부류들이었다.
또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돈을 따거나 돈을 탕진하면 기분이 좋아서 한 잔, 기분이 나빠서 한 잔하는 것이 도박을 즐기는 남자들의 기분이었다.
그리고 카지노 주변에서 술을 마시는데 여자가 없는 것은 ‘약방에 감초’가 빠진 것과 마찬가지.
서울 강남 텐프로 수준의 반반한 여성에게는 하룻밤에 500만 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카지노 주변이 환락가로 변하면서 마사지 업소와 전당포 업소가 성업하고 있다
강원랜드 VIP룸에서 2007년까지 하룻밤에 수억~10억 원의 사채를 동원할 정도의 큰 손으로 알려진 윤미자(60.가명)씨의 회고.
“강원랜드 초창기 수억의 돈을 딴 고객들은 흥청망청 썼다. 거의 돈을 뿌리는 수준이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최고급 양주를 마시고 호텔로 텐프로 수준의 아가씨를 불러 밤을 지냈다. 카지노에 게임하러 온 연예인을 통해 이름 없는 가수나 탤런트를 소개받기도 했다.
물론 연결해준 연예인에게는 두둑한 팁을 건네주는 것은 기본이다. 미스코리아처럼 어여쁜 아가씨에게 500만 원짜리 수표를 날렸다. 기분이 좋으면 하룻밤에 수천만 원 쓰는 것은 보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