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100억 부자'가 '카지노, 마약'으로 망한 후 깨달은 것[이승환의 노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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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100억 부자'가 '카지노, 마약'으로 망한 후 깨달은 것[이승환의 노캡]

매니저 기자 0 55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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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마약중독재활센터 경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에서 임상현 센터장이 마약 중독자였던 입소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21년 9월 '회복자들'이라는 제목의 기획 보도를 추진했다. 약물 중독에서 벗어났거나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기획물이었다. 광명시에 있는 '경기도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를 취재했다. 경기도 다르크는 민간 주거형 마약 재활시설이다.

두어 시간 동안 입소자 총 10명 중 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의 사연은 의미 있었고, 재활 과정은 극적이었다. 다만 다른 매체들이 이미 보도한 마약 중독 기획과 차별화하기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다. '새로운 것'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고민을 느끼던 차였다.

임상현 경기도 다르크 센터장(당시 70세)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취재 잘하셨죠? 오늘 수고했습니다." 이에 필자는 "감사하다"고 답하고 무심결에 한마디 덧붙였다. "센터장님도 예전에 마약에 중독돼 아주 힘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극복하시고, 좋은 일 하시니 감동적이네요."

그 말에 임 센터장은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1시간 이상 폭풍우처럼 자신의 '사연'을 쏟아냈다. 드라마 한 편이 펼쳐졌다. 필자는 질문하지 않고 거의 듣기만 했다.

◇"한 번에 중독되지 않는다"

임 센터장은 미성년자이던 17세 때 처음으로 세코날을 투약했다. 세코날은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 계열이다. 그는 서울역 인근에 살고 있었다. 모두 먹고사는 데 바빴고 경찰의 단속이나 제지는 없었다. 성인이 된 그는 술집 뒤를 봐주는 건달 노릇을 했다. 이후 이태원에서 가라오케와 성인 디스코 바, 룸살롱을 운영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의기양양했던 겉모습과 달리 그의 내면은 사막처럼 황폐해졌다. 약물에 잠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7년에 대마관리법이 시행되기 전만 해도 거리낌 없이 대마초를 피우는 분위기였다. 임 센터장은 대마초에 이어 코카인·필로폰·헤로인에도 손을 댔다. 하루에 대여섯 차례 고위험 마약류 필로폰을 투약할 정도였다.

임 센터장은 "마약이란 게 한 번에 중독되지 않는다"며 "스며들 듯 천천히 중독된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끊고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아내를 만난 것은 1984년 그가 서른세 살이던 해였다. 아내는 임 센터장보다 여섯 살 어렸고 그가 마약 중독자인지 모르고 결혼했다. 두 사람의 신혼집은 서울 압구정동 한양 아파트였다. 압구정동은 1980년대 고소득 강남 시대를 연 부의 상징이다. 임 센터장의 그때 재산은 100억원이었다. 현재 기준으로는 최소 300억원이 넘는 큰돈이다.

그러나 그는 약물 부작용으로 조현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환시·환청·환각·편집증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조현병 증세인 피해망상에도 휩싸였다. 아내를 의심하고 부모를 의심하고 종업원을 의심했다.

"저희 가족은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었죠. 그런데 1층에서 뚜벅뚜벅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급기야 아내 옆으로 한 남성이 보였지요. '이놈, 내 아내와 바람피우고 있구나' 소리치며 흉기를 휘둘렀어요. 그러자 남자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물론 모두 환청, 환각이었습니다. 제 삶은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임 센터장은 끊임없이 투약했고 도박판도 전전했다. 금·토요일은 경마를 하고, 수·목요일은 경정을 했으며, 월·화요일에는 카지노를 했다. 100억대 재산은 마약과 도박으로 날리고 그는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아내가 떠나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아이들(자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 센터장이 밤늦게 현관문을 열면 거실에 있던 아내와 아들들이 방으로 도망쳤다. "왜 죽지 않고 또 들어왔냐"고 수군대는 소리가 곧 들려왔다.

임 센터장은 마약 전과 9범인데, 그중 7건은 아내가 신고해 검거된 것이다. 나머지 2건 중 1건은 본인이 자수해 붙잡힌 것이다. 다른 1건은 함께 마약하는 후배조차 '너무 심하다'며 그를 신고한 것이다. 몸부림치며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재활' '단약' '회복'을 돕는 지원단체나 국가 차원의 재활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보, 맛있는 것 좀 사줘"   

2009년 말 출소한 후 그는 펑펑 울며 신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 후회와 자책으로 얼룩진 어느 날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내 여자를 고생시키면 안 된다'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자'는 평범하고 소소한 다짐을 하던 시기였다.

눈앞에 있던 중년의 아내는 쓸쓸한 얼굴로 임 센터장에게 묻고 있었다.

"여보, 이제 마약·도박은 조금만 하고 나 맛있는 것 좀 사주면 안 돼?"

매일 같이 '도박하지 마라' '마약하지 마라' 했던 아내였다. 그런데 '조금만 하고 맛있는 것 사달라'니, 처음엔 '왜 이러나' '이 여자가 미쳤나' 싶었다. 도박장에서 베팅하던 중 아내의 그 말이 뇌리에 스쳐갔다. 그길로 밖으로 나와 아내를 불러냈다. 아내가 좋아하는 '새우' 요리를 사주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 아내에게 자장면을 사줬어요. 그런데 자장면을 먹던 아내가 갑자기 엉엉 우는 것이에요. 자장면을 먹다가…….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죠. '나는 정말 못난 놈이구나' '저 착한 여자를 너무 힘들게 했구나'…… 온갖 회한이 밀려왔습니다."

임 센터장은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자신과 가족들의 비참한 모습을 떠올렸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아내는 쓰레기를 줍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패션 감각이 뛰어났고 모델이었던 아내의 젊은 시절 모습은 종적을 감췄다. 아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임 센터장은 하루 4시간만 자고 돈을 벌었다. 주차관리 요원과 대리기사로 일했다. 2009년 출소 후 마약을 끊고 그렇게 10년간 모은 돈을 투자해 다르크를 설립했다. 이미 수많은 보도로 알려진 마약 금단현상들과 싸우는 이들이 다르크에 입소했다. 최소 한 번은 교도소 경험이 있는 20·30대 청년이 대부분이다.

◇이미 전쟁 같은 삶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하기 전에 이들은 이미 금단증상으로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임 센터장의 아내와 같은 '구원의 손길'이 이들에게도 찾아올까. '다르크' 입소자들은 무너지려는 '단약 의지'를 다시 일으킨 것은 회복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르크'에서 24시간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 중인 오모씨(20대)는 "재활 과정에서 힘든 부분이나 단약 노하우를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과 공유하고 얘기 나누는 시간이 흔들리는 마음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임상현 센터장은 "마약 금지는 교도소나 병원에서도 할 수 있지만 중독자들이 마약을 완전히 단절하려면 그들의 주위 환경부터 변해야 한다"며 "마약을 끊은 사람들, 마약을 끊으려 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다독이는 과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마약 사범들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투약 재범률'을 낮추는 최선의 방법은 중독자들이 임 센터장처럼 마약을 끊고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 후 이들이 회복할 시간과 공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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