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실종’ 미스터리 ‘설설설’ - ㊽김형욱 전 중정부장과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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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실종’ 미스터리 ‘설설설’ - ㊽김형욱 전 중정부장과 카지노

매니저 기자 0 487 0 0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실종된 것은 10·26 발발 약 20일 전인 1979년 10월 7일로 알려지고 있다.

김형욱 실종사건이 발생한 이후 다양한 증언이 언론을 통해 쏟아졌지만 소설과 같은 이야기가 난무하면서 실체적 진실여부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언론인과 소설가들은 끈질긴 추적을 통해 김형욱의 마지막 행적에 접근한 뒤 책을 발간하거나 주간지와 월간지에서 관련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추적보도가 잇따랐지만 진위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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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의 김형욱 전 중정부장 


지난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이 사건을 조사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에 따르면 김형욱은 1979년 10월7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중정의 사주를 받은 외국인 2명에 의해 살해됐다고 발표하였다.

진실위가 발표한 김형욱 실종사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김재규 중정부장의 지시를 받은 이상열 프랑스 공사가 중정 해외연수생 신모, 이모 2명에게 살해 지령 ▲신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동유럽인 2명에게 살해 청부 ▲이들은 김형욱을 차에 태운 뒤 인적이 드문 숲으로 끌고 가 중정에서 건네받은 소련제 권총으로 7발을 발사해 살해한 후 낙엽으로 주검을 은폐하였다.

국가기관이 김형욱 실종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조사해 공식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당시 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위원장은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사결과 김재규 중정부장의 지시를 받은 이상열 프랑스 공사가 중정 해외연수생 신모, 이모 2명에게 살해 지령을 내린 것으로 결론지었다. 또 연수생 신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동유럽인 2명에게 살해를 청부한 것으로 진술하였다.

이들은 김형욱을 차에 태운 뒤 인적이 드문 숲으로 끌고 가 중정에서 건네받은 소련제 권총으로 7발을 발사해 죽인 후 낙엽으로 주검을 가렸다. 프랑스 파리의 공원은 우리가 아는 공원과 다르다. 그곳의 공원은 골짜기에 낙엽이 쌓이면 사람 하나 서 있어도 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우리는 각종 조사와 자료를 근거로 했고 가장 진실에 근접했다고 판단하였다. 일부에서 양계장 분쇄기 살해와 국내 송환 후 살해 등의 주장이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당시 조사결과를 신뢰하고 있다. 조사위는 당시 국정원 존안자료 748건과 추가 자료 등을 토대로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특히 조사위는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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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일 전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장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행적은 1997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 시내 개선문 옆의 ‘르 그랑 세르크로’ 카지노에서 목격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김형욱의 실종 10일이 지나서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에 살고 있던 김형욱(55)씨가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뒤 9일째 행방불명이다. 김씨는 이날 상오 10시쯤 상제리제 부근 웨스트 엔드 호텔에 방을 잡고 나간 뒤 16일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호텔측은 예약이 없었던 김씨가 혼자 나타나 5일간 방을 쓰겠다고 말한 다음 405호실에 짐(큰 가방 한 개, 골프 가방 한 개)을 풀고 30분쯤 뒤 호텔을 나갔다고 밝혔다. 김씨의 행적은 호텔을 나간 뒤 그가 자주 다니던 파리 시내 개선문 옆의 카지노 ‘그 그랑 세르크로’에서 온종일 도박을 했다는 것까지만 밝혀지고 있다.(중략)

호텔 측은 김씨의 짐을 치우며 방에서 그가 다니는 개선문 옆의 카지노 르 그랑 세르크로의 카드를 발견, 카지노에 전화를 걸어 김씨에 관해 물어보았으나 김씨가 지난 7일 한 번 다녀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말했다.(중략) 중앙일보 1979년 10월 17일자>

진실위가 김형욱 실종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니 않아 한 시사주간지는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프랑스 파리의 외곽 양계장에서 암살됐다는 주장을 펴 논란을 촉발시켰다.

2005년 4월 11일 발매된 ‘시사저널’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과 관련, 지난 1979년 10월 7일 밤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김 전 부장을 납치해 시외곽의 양계장에서 그를 암살했다는 이모씨의 말을 인용, 김 전 부장의 납치에서부터 살해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을 보도했다.

<중앙정보부가 양성한 특수 비선 공작원인 이모씨는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 레스토랑에서 김 전 부장을 납치했다”며 “김형욱이 한국 여배우 ○○○씨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레스토랑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그 여배우가 보낸 안내자 행세를 하며 납치하는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캐딜락 승용차 안에서 김형욱을 마취시킨 다음 밤 11시께 파리시 서북 방향 외곽 4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양계장으로 가서 분쇄기에 그를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며 김 전 부장의 죽음에 대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증언했다.

이씨는 “우리는 암살 실행조였고 유인조는 따로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파견돼 특수 암살 훈련을 받은 곽○○씨와 한 조가 되어 김형욱을 암살했다”며 “한국 여배우가 현장에 있었지만 그 여배우는 자기가 김형욱 암살 목적에 동원된 사실은 전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당시 김 전 부장은 가벼운 수준의 마취를 했기 때문에 양계장에 도착할 때까지 어리어리한 상태였다. 급소를 잡고 들쳐멘 채 분쇄기 계단 위로 올라갔다. 살은 좀 쪘지만 키가 그리 크지 않아서 무겁지는 않았다. 머리부터 분쇄기에 집어넣었다. 잠깐 동안 흔적도 없이 분쇄되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닭에게 공급되었다”며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씨는 당시의 심정을 “우리는 교수대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인의 심정으로 그를 분쇄기에 처리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는 사라져 줘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다른 감상이란 있을 수 없었다”며 “다만 마지막 유명을 달리하는 자에게 가장 고통이 적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우리 세계의 철칙에 따라 머리부터 집어넣어 부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거는 묻지 말라. 박대통령이 ‘그놈 못쓰겠더라’고 하면 밑에 사람은 당연히 ‘각하 안심하십시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하는 것이 원칙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그래서 지금도 김형욱 사건은 중정에 기록이 없다.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가 지시하고 의논하고 보고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1979년 초 밤에 불려갔는데 청와대 별관으로 알고 있다. 경호하는 분들이 옆에 있었지만 나는 대통령 말씀을 듣느라 긴장돼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술을 따라 주셨다. 그것뿐이었다”며 파리로 가기 전에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과정도 설명했다.

이씨는 지금의 심정에 대해서는 “그 일은 대의명분을 세워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교도관이 사형수를 처형해도 기분이 불쾌한 일인데, 인간을 그렇게 처리한 내 기분이 좋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언젠가 내가 조사받으며 진실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파리로 떠날 때 나는 후배에게 우리의 행위가 종교적으로 돌아보아 떳떳한가, 김형욱의 가족 앞에 떳떳한가를 생각하고 나서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지금 김형욱씨 가족이 살아있는데 왜 기자는 나에게 이런 말까지 모두 하게 만드는가”라며 “(국정원의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 나가 밝힐 의향에 대해서는)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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