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VIP꽁지’로 500억 번 전설 - ㉔강원랜드 VIP전설들
2000년 가을, 국내 유일의 내국인출입 카지노가 강원도 탄광촌에서 개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당수의 조폭들이 강원랜드에 군침을 흘렸다.
하루에 수백, 수천억 원의 판돈이 몰리는 카지노에서 꽁지(사채)로 돈을 버는 새로운 사업에 구미가 당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카오 카지노에서 정켓방을 운영하거나 정켓방에 한국인 고객을 연결해 주는 에이전시들도 돈 많은 고객을 마카오로 유치하기 위해 강원도 첩첩산골의 강원랜드를 찾았다.
당시 강원랜드 VIP룸에서 전설을 남긴 사채업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서울 동대문파 보스로 알려진 박종식(가명)씨다.
박씨 집안은 원래 함경도가 고향이었지만 아버지를 따라 1.4후퇴 때 월남한 뒤, 실향민들과 동대문 근처 청계천에 둥지를 틀었다.
박씨를 잘 아는 임혜련(가명)씨의 회고. 그는 박씨와 함께 꽁지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강원랜드 VIP 꽁지의 전설로 알려진 박종식씨의 형 박은식(가명)은 1945년 함경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바로 아래 동생인 종식씨는 1.4후퇴 당시 함경도에서 월남한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 청계천에서 출생하였다.
6.25전쟁이 종료되었지만 맨손으로 월남한 박씨 가족들은 청계천에서 천막을 치고 매일을 끼니걱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다.
형편이 어려운 탓에 박씨 형제들은 초등학교의 문턱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탓에 한글 맞춤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수완이 뛰어났다. 끼니 걱정에 학교는 생각도 못하였지만 어려서부터 험한 세상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박은식은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로 명성을 날린 동대문파의 이정재 사단에 막내로 들어가 잔뼈가 굵은 뒤 나중에는 동대문파의 보스가 된 인물이다.”
6.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당시 수도 서울에는 무질서가 판을 치던 혼란기로 주먹들이 득세하면서 그들에게는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도 돈이 가장 잘 도는 곳이 전국 최대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던 동대문시장이었으니 동대문지역에 유명한 건달들이 진을 치는 것은 당연지사.
동대문은 또한 연예계와 경마장을 끼고 있던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에서는 ‘동대문파’ 주먹이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강원랜드 카지노 입구에서 보안 직원들이 고객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
당시 동대문파는 자유당의 행동대장으로 유명한 이정재를 두목으로 연예계의 네로황제로 알려진 임화수, 동대문 일대의 리어카와 지게부대의 실권자인 조열승, 머리회전이 빠른 유지광 등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장안의 두 번째 조직으로는 명동의 시공관(국립극장)과 중앙극장, 충무로, 무교동, 북창동을 장악하고 있던 ‘명동연합파’가 활동하였다.
명동파는 평양 박치기로 유명한 이화룡, 시라소니로 알려진 이성순, 6.25당시 켈로부대에서 활동했던 정팔, 싸움의 달인으로 알려진 신상사로 불려진 신상현 등 기라성 같은 주먹을 포진하였다. 명동파는 조직의 60% 이상이 실향민 출신이 장악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종로에는 주먹황제로 알려진 김두한이 주름 잡다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주먹세계를 은퇴하자 김두한의 행동대장이었던 심현종이 ‘종로파’의 보스를, 행동대장은 선린상고 출신의 박원선이 차지했었다.
어려서부터 싸움으로 단련된 은식은 동대문파 조직의 활동을 보고 자란 탓에 의리를 중시하는 주먹세계를 흠모하다가 자연스레 동대문파에 입문했던 것이다.
1960년대 초반에 동대문파에 들어간 그는 선배들에게 건달들의 싸움은 칼이나 몽둥이는 절대 쓰지 않고 반드시 주먹과 발로만 겨뤄야 한다는 것을 보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형에 대해 ‘장안의 마지막 남은 진짜 주먹’으로 평가했다.
1990년대 조폭출신으로 교도소에 다녀왔던 이용범(가명)씨의 회고.
“1970년대 후반부터 서울의 조직폭력배 싸움에서는 몽둥이와 칼이 난무했다. 그러나 과거 박종식의 형 은식이 동대문을 주름 잡던 시절에는 흉기를 사용하는 일이 없었다.
당시 주먹들은 의리를 중시하며 싸움에서도 맨주먹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렸다. 호남파 등 지방 주먹들이 서울에 올라와 세력간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회칼과 야구방망이 등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먹세계에서 박씨의 형은 우리나라 주먹세계의 마지막 전설로 통한다. 1980년대 초반까지 호남출신 주목들이 장안을 장악해 나갔지만 박씨 형제가 보스로 있던 동대문은 그렇지 못하였다.
호남의 여러 주먹들이 동대문을 장악하려다가 박씨의 하수인이 되거나 얻어터지고는 물러나야 했다. 동대문파는 그만큼 막강한 조직이었다.”
동생 종식은 형 은식의 후광으로 동대문파의 중간 보스로 활동하고 막내 동생인 경식이 역시 동대문파의 일원이 되었다. 1980년대 동대문판의 보스인 은식은 이스턴호텔 나이트클럽의 지배인을 맡기도 했다.
동대문파의 중간보스로 무교동에서 민속주점을 하던 종식은 강원랜드가 2000년 10월 개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카지노에서 승부를 보기로 하였다.
그는 민속주점을 처분해 꽁지 사업자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평소 매사가 분명하면서도 계산이 빠르다는 소리를 들어온 그는 강원랜드를 통해 노후자금을 만들어 가족과 편안한 여생을 보낼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해서 만든 5000만 원의 자본금을 마련한 그는 2000년 11월 강원랜드 VIP회원에 등록하고 사채사업을 시작했다.
부인과 아들은 서울에서 남겨둔 채 박씨는 혼자 강원랜드에서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며 이를 악물었다.
“벌어놓은 돈도 없고 전 재산 5000만 원으로 강원랜드에서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 돈을 불려서 최소 100억 원의 돈을 모으면 강원랜드를 떠나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자 장사를 하려면 원금 회수를 잘 해야 한다. 100% 수금원칙을 가지고 돈 장사를 해야지 인정사정을 봐주면 돈 장사는 바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VIP룸에서 사채업을 하는데 5000만 원은 다른 꽁지들에 비하면 ‘껌 값’에 불과하였다.
박씨에게는 전 재산인 5000만 원을 잘 불려 차곡차곡 돈을 쌓아 놓으려면 신용이 좋은 고객에게만 돈을 빌려주고 수금을 100% 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자신의 평생 터전이었던 동대문을 떠나 첩첩산골 강원도 탄광촌인 고한에 자리를 잡은 박씨는 VIP 고객 1명에게 보통 500만 원을 빌려주되 최대 1000만 원을 한도로 빌려주었다.
VIP 고객의 장점은 원래 돈을 빌려준 뒤 5일 뒤에 돈을 받기로 하지만 운이 좋으면 1, 2시간 만에 100% 원금을 상환하는 일도 많았다. 또 원금 회수가 늦어도 다음날 아침 카지노가 문을 닫는 오전 6시면 대부분의 고객은 상환을 원칙으로 하였다.
돈 1000만 원을 받으러 서울 사무실이나 집으로 오는 것도 돈 많은 고객 입장에서는 창피하고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악착같이 꽁지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VIP룸에서 고객의 돈으로 함께 베팅을 하면서 게임마일리지(콤프)를 착실하게 올리고 자신도 그림이 좋으면 바카라 게임을 하면서 콤프를 올렸다.
박씨는 이렇게 만들어진 콤프를 가지고 강원랜드 스몰카지노 호텔에서 월세 방을 얻었다. 당시 호텔 객실은 1개월에 150만 원이었고, 콤프로 100% 결제가 가능했다.
식사와 음료는 VIP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되었다. 식사도 훌륭한 편이었기 때문에 카지노와 호텔에서 숙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마카오 카지노 주변 골목에 위치한 귀금속 상점은 전당포를 겸업하고 있다
박씨는 특히 빌려준 돈은 100% 수금을 원칙으로 했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특별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속한 날짜에 상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는 고객에게 한 번은 봐주었지만 두 번째에도 상환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채근을 하였다.
박씨를 잘 아는 강원랜드 VIP 고객 남정모(가명)씨의 진술.
“강원랜드 VIP에서 박종식은 가장 악랄한 꽁지로 유명했다. 고객이 제 날짜에 피치 못한 사정으로 돈을 갚지 못하면 호텔 방에 불러 불 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 눈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의 눈처럼 보였다.
성격도 불 같은데다가 서울에서 알아주는 주먹세계를 주름 잡은 사람이라는 소문 때문에 대부분의 고객들은 알아서 돈을 갚았다. 그러나 한 두 번 약속을 어기면 살기가 돌 것처럼 사람을 다그친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돈을 빌려서라도 갚아야만 했다. 가장 악랄한 꽁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실제 일부 고객은 돈을 갚지 못하게 되면 박씨를 일부러 피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바로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
박씨를 잘 아는 다른 고객의 회고.
“박씨는 꽁지를 하면서 100% 수금을 원칙으로 했다. 또 실제 99% 수금을 완수해 강원랜드에서 최고의 원금 회수율을 자랑했다. 한 번은 돈을 빌려간 40대 고객이 자꾸 거짓말을 하며 돈을 갚지를 않자 호텔 객실로 불러서는 다그쳤다.
돈이 생기면 준다는 말을 들은 박씨는 그 고객의 귀를 입으로 물어뜯었다. 주먹으로 얼굴이나 복부를 폭행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경찰에 폭행혐의로 신고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귀를 물어뜯긴 40대 고객은 귀에서 시뻘건 피가 나오자 ‘살려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만약 한번 만 더 약속을 안 지키면 목을 따겠다’고 말했다. 이 고객은 이틀 후 돈을 갚았다. 강원랜드 VIP꽁지 가운데 가장 악랄한 업자로 소문난 사건이 이처럼 귀를 물어뜯은 사건이었다.”
이렇게 남들에게 손가락질까지 받으며 열심히 꽁지를 한 결과 그는 6개월 만에 원금을 빼고 번 돈이 억대가 되었다.
하루는 3000만 원을 빌려간 한 고객이 게임이 풀리질 않아 빌려간 돈을 다 잃게 되자 서울에 따라오면 돈을 바로 갚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서울에서 부동산 사업을 한다는 고객의 BMW 승용차를 얻어 타고 서울 강남의 단독주택에 도착한 이 고객은 박씨를 대문 밖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집 사람이 카지노에 다녀온 것을 알면 큰일 난다. 잠시만 기다리면 내가 담배 갑에 수표를 넣어 대문 밑으로 밀어 줄테니 받으라.”
한 10여 분이 지나자 고객이 말한 것처럼 문 밖으로 담배 갑을 슬그머니 던졌다.
박씨는 담배 갑 뚜껑을 열어 보니 담배는 없고 그 안에 500만 원 권 수표 6장이 돌돌 말려 담겨 있었다.
또 한 번은 약초도매상을 한다는 VIP 고객의 돈을 받으러 강원랜드 리무진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갔는데 사과박스에 담긴 1만 원 권 현금 5000만 원을 받아 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