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VIP 꽁지의 전설’ 동대문 박사장 - ㉖강원랜드 VIP룸의 전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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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VIP 꽁지의 전설’ 동대문 박사장 - ㉖강원랜드 VIP룸의 전설들

매니저 기자 0 466 0 0

박종식(가명)이 강원랜드 VIP룸의 꽁지 전설을 만든 장본인이라면 꽁지 사업의 동업을 위해 사북으로 초청한 그의 친형 박종팔(가명)은 전설적인 주먹세계의 보스였다.

자유당 정권 말기 동대문 이정재 사단의 막내로 들어가 주먹세계와 인연을 맺은 종팔은 서울의 마지막 남은 ‘낭만파 주먹’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서울의 건달 세계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각목과 쇠파이프는 물론 회칼이 난무하는 조직들간의 패싸움에서도 종팔은 맨주먹으로 동대문을 지키고 평정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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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봉체조 


그런 전설적인 종팔이 버티고 있는 동대문에는 호남주먹이 서울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했어도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의 형은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고 3년 만에 돌아왔는데 그의 이야기는 주먹세계에서 신화처럼 회자되고 있다.

박종팔의 친구로 함께 삼청교육대를 다녀온 A씨의 회고.

“1980년 여름 종팔은 동대문 조직폭력배의 두목으로 경찰과 신군부에 지목되어 3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삼청교육대에 입소하자 머리를 박박 밀고 군복으로 갈아입힌 뒤 동대문파의 두목이라는 사실 때문에 군인들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했다.

30분 이상 폭행을 당한 종팔은 군인들에게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과 앞으로 삼청교육대에서의 생활을 좀 편하게 하고 싶은 구상을 했다. 그래서 감춰둔 면도칼로 배를 가르고 피를 뿌리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동대문파 보스를 했던 조직 두목이다. 내 배에 소금을 뿌려 회를 쳐 먹도록 해라’고 말하며 발악을 하였다. 당시 종팔의 생각은 배를 갈라 피를 흘리며 쓰러지면 병원에 후송시키고 지독한 놈이니 앞으로는 잘 봐줄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를 본 지휘관은 ‘그래, 잘 됐다. 이놈 내장에 소금을 뿌려 빈 쌀가마니에 둘둘 말아 쓰레기장에 버려라’고 소리를 쳤다. 실제 군인들은 종팔을 병원에 보내기는커녕 시체를 처리하듯이 배를 가른 종팔을 빈 쌀가마니에 싸서는 쓰레기장에 버렸다.

조폭 두목 체면에 살려달라고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쓰레기장에 버려진 종팔은 눈앞이 캄캄했다. 혼자서 지혈을 하고 몸을 추스렸는데 밤이 되자 몸이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밥을 먹지 못해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다음날 그는 쓰레기장을 뒤져 먹을 만한 것을 억지로 챙겨먹으며 3일을 버텼다. 결국 3일 만에 쓰레기장을 나와 그는 삼청교육대에 합류했다. 삼청교육대 교육을 마친 종팔은 청송감호소로 이송되어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종팔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지 3년 만에 청송감호소를 거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 때에 삼청교육대 피해자 보상신청을 해서 그는 4000만 원 가량의 보상금을 받았다.

무척이나 까다로 왔던 삼청교육대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종팔은 허벅지 흉터를 비롯해 온 몸에 남은 흉측한 흉터를 증거로 확인시켰다. 3형제 가운데 큰 형인 종팔만 삼청교육대에 끌려 간 것이었다.”

박종식은 사북 소라아파트에 형과 형수를 이주시킨 뒤 안방에 숙식을 하도록 했다. 또 그는 형과 형수에게 강원랜드 VIP 회원으로 등록시킨 뒤 꽁지 동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도록 하였다.

특히 그의 형수는 뛰어난 미모에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인 탓에 점잖은 VIP 고객들에게 꽁지 돈을 빌려 쓰도록 하는 업무를 맡겼는데 친화력이 좋은 탓에 든든한 동업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박종식의 형수인 A씨의 회고.

“2004년 봄, 시동생의 요청을 받고 우리 부부는 사북 소라아파트로 간단하게 짐을 꾸려 이사왔다. 시동생은 2층에 위치한 아파트 창문과 베란다에 3000만 원을 들여 튼튼한 방범창을 달고 내부 리모델링까지 하였다.

또 거실에는 체력단련용 샌드백도 매달았다. 현관문도 시건장치를 2중으로 설치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집안에 금고를 들여 놓고 수십억 원대의 현금과 귀금속을 보관하였다. 예리한 칼과 손도끼도 시동생 침대 밑에 비상용으로 비치하였다.

돈을 빌려간 고객 가운데 원한을 사거나 돈이 많은 꽁지 집이 알려질 경우, 흉기를 들고 언제 괴한들이 들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격이 불같은 시동생은 매사에 항상 빈틈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가족 외에는 어떤 사람도 출입을 시키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할 정도였다.”

꽁지로 빌려준 돈 가운데 회수하지 못한 사채수금을 위해 종식는 서울이나 부산, 광주 등 지방으로 출장을 가거나 마카오, 필리핀에도 머리를 식히러 떠나기도 하였다.

종식 형수는 강원랜드 VIP룸에 출근해 시동생 대신 사채업을 하거나 빌려준 돈을 수금하는 일이 많아졌다.

종식의 형수는 요지경 같은 VIP룸의 다양한 실상을 접했다. 


“VIP룸의 꽁지사업은 은행이 문을 닫는 시간에 이뤄진다. 하루는 한 변호사 고객이 초저녁에 5000만 원을 빌렸다. 운이 좋아서 1시간이 조금 지나 억대의 돈을 따자 바로 빌린 돈을 상환했다.

1시간 만에 500만 원을 번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딴 돈을 몽땅 잃었고 다시 5000만 원을 빌리게 되었다. 역시 선이자를 떼고 4500만 원을 빌려줬다. 그리고 게임이 잘 풀려 2시간 뒤 다시 원금을 갚았다.

이제는 게임을 그만 두겠지 했는데 잘 풀리던 게임이 내리막길을 걷는 바람에 다시 올인 되어 3번째 돈을 빌렸다. 그 때가 밤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역시 심사숙고며 게임을 잘 하던 그 고객은 아쉽게도 1시간이 안 되어 다시 빈 털털이가 된 것이다.

새벽 1시쯤 이 손님은 5000만 원을 다시 빌려달라고 손을 벌리기 때문에 다시 5000만 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한 손님에게만 하룻저녁에 5000만 원씩 3차례나 빌려줘 1500만 원을 벌었기 때문에 양심상 이번에는 이자를 받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4번째 돈을 빌려 줄 때는 이자는 한 푼도 떼지 않고 5000만 원을 몽땅 빌려 주었다. 아침 6시 가까운 시간에 겨우 본전을 맞춘 이 고객은 원금 5000만 원을 다시 상환하고는 일어섰다.”

이렇게 형과 형수가 든든한 동업자로 나선 이후에는 종식의 꽁지 사업이 잘 풀려 2006년 초에는 500억 원 가까운 재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2006년 봄이 되면서 강원랜드 VIP 고객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큰 손 고객들의 출입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강원랜드 개장이후 만 5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진 재산이 많으면서 도박을 좋아하거나 조직폭력으로 큰돈을 번 전국의 알아주는 주먹들이 강원랜드 VIP룸에서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한 상태였다.

이를 간파한 종식은 강원랜드 대신 다른 사업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강원랜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큰 마카오로 사업장소를 옮겨 사채와 정켓사업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사업 구상은 꽁지생활을 청산하고 종합건설업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형을 종합건설회사 회장으로 앉혀 관급공사를 수주하고 자신도 나름의 인맥을 동원하면 아파트 분양사업도 자신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때부터 종식은 마카오에 원정을 가서 후배들이 하는 정켓방에서 한국인 고객 가운데 신용이
좋은 VIP 고객을 대상으로 꽁지를 하며 발을 넓히기 시작하였다.

또 사북에서 종합건설업을 인수하거나 신규로 허가를 내서 하는 방안도 형과 상의하며 사업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카오 원정 꽁지사업이 그에게 있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된 것을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꽁지로 500억 원의 돈을 벌었으면 평생 호위호식하면서 살 수 있는 상황이건만 막상 큰돈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서 화를 자초한 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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