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최고의 ‘골프연습장 전설’을 만든 마당발 - ㊹카지노 ‘마당발’ 이용복 사부(師父)
강원랜드 주변에서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용복(가명)씨는 1980년대 강남 골프연습장의 전설을 만든 인물이다. 그의 다른 애칭은 ‘카지노 마당발’이다.
강원랜드의 전설적인 VIP 꽁지를 비롯해 중국인 화교 삼형제, 탈북자출신의 카지노 타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국인 큰손을 움직인 에이전시, 제5공화국의 실세, 대기업 임원출신의 카지노 앵벌이 등이 그의 인맥 가운데 일부다.
하루 수십만 원을 버는 ‘생활바카라’로 강원랜드에 출근하고 있는 그는, 10년 전만 해도 하루에 수십억 원을 주무르는 능력을 가진 ‘회장님’ 소리를 듣던 거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강원랜드 VIP룸에서 꽁지를 하는 A씨를 만나 동업을 하면서 강원랜드와 인연을 맺었다가 추락했지만 지금도 그는 인생을 해피하게 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그의 회고담.
“2007년까지 현금만 수십억 원을 굴릴 정도로 여유 있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강원랜드에서 꽁지로 500억 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난 A사장을 만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대한민국 최고 VIP만 산다는 강남 타워팰리스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그는 강남에 아파트 시행사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를 받았다. 시행사 사무실 공사비로만 5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는 사무실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그런 그가 나에게 1억 원짜리 수표 5장을 맡기며 잘 도와달라고 접근했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영수증도 받지 않고 5억 원을 맡기는 것을 보면서 통 큰 사업가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게 미끼인줄 몰랐다. 나도 5억 원을 투자해 사북에서 꽁지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사업자금이 부족하다고 추가로 5억, 10억 원 투자를 종용했다. 어차피 발을 넣었는데 외면할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노후자금으로 갖고 있던 35여억 원 모두를 투자하는 것처럼 맡기고 말았다.
그는 강원랜드에서 1년 만 꽁지사업을 하면 수백억 원을 벌게 해준다고 장담했다. 이 말이 달콤한 유혹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불과 몇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꽁지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투자한 사업자금을 하우스 도박으로 날렸다.
마카오 원정도박으로 수십억 원을 탕진하기도 하였다. 그런 사람과 동업을 했으니 사람 잘못 만난 나만 바보가 되었다.
결국 꽁지동업이 실패하면서 서울의 부동산을 처분해 고한으로 이주하였다. 카지노 꽁지로 돈을 벌려다가 이제는 카지노에서 생활바카라를 배워 한 달에 수백만 원을 벌어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생활바카라’로 강원랜드 주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의 청춘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잘 나가던 황금기였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서울시청의 개발부서 공무원으로 호의호식 했는가 하면 1980년대에는 강남에서 떵떵거리고 살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나온 그는 1974년 토목직 7급 공채로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다. 강남개발이 한창이던 당시 서울시청 도시계획국에서도 노른자 땅인 구획정리 업무를 담당했다.
강남의 도시개발 계획이 그의 손을 거쳐서 완성되었고, 심지어 구로지역은 물론 경인지구 개발사업도 그의 아이디어로서 건설부에서 ‘차용’했을 정도다.
업무처리 능력이 뛰어난 탓에 공무원 생활 3년 만인 1977년, 28세의 나이에 6급으로 승진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압구정동 요지에 수십만 평의 아파트 부지를 가지고 있었고 한양건설, 대림건설, ㈜삼호주택 등 국내에서 손꼽는 유력 건설회사들은 이씨의 구획정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때문에 강남개발에 목을 매고 있는 대기업 임원들이 그를 찾아와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
당시 외국인전용 카지노의 대명사인 파라다이스 전락원 회장의 누나인 전숙희 여사도 찾아와 부탁을 하거나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 이씨의 전언이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잘 나가던 이씨는 1979년 하반기에 5급 사무관 승진시험 준비를 하다가 10.26사태를 맞았다.
그리고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뒤 ‘유신사무관’들이 중앙부처는 물론 서울시에까지 대거 들어오면서 사무관 승진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혹시나 하고 승진을 위해 2년간 기다리던 그는 1982년 사무관 승진을 포기하고 공무원을 퇴직했다.
서울시 공무원을 하며 서울의 1군 건설회사 들과 인연을 맺은 탓에 이용복씨는 종합건설 회사를 차리고 1군 건설사들의 하청을 맡기로 하였다.
1군 건설회사의 관급 공사는 물론 아파트단지 공사에 하청업체로 들어간 이씨의 건설회사는 시작과 동시에 승승장구하면서 연간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씨의 회고.
“서울시 공무원을 그만두고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한 그룹의 계열사에서 그동안의 신세를 갚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회사의 임원이 나에게 제안했는데 계열사 부지 1만 평이 강남요지에 있는데 소송 때문에 매각이나 개발도 못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최소 10년간은 사용할 수 있으니 이곳에 골프연습장을 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임대료는 한 푼도 받지 않을 테니 골프연습장을 하라는 것이었다. 경기고 맞은편인데, 지금의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이다.”
1974년 당시 10억 원을 투자한 골프연습장은 서울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는 여의도 골프연습장과 비슷한 규모였고, ‘강남스타일’에 맞게 시설을 화려하게 꾸몄다.
연습장은 2층으로 만들었는데 1층과 2층에 각각 50타씩 한꺼번에 100명이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캐디도 강남 수준에 맞게 미모를 갖춘 미혼 여성을 선발했고, 점심을 무료 제공했다.
돈 많은 사업가와 연예인은 물론 고위 공직자들이 연습장에 찾아오는 탓에 캐디들은 상당한 팁을 부수입으로 챙길 수 있었다.
강남에 대형 골프연습장이 개장하자 정계와 재계는 물론 연예인과 유명 인사들까지 찾아오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씨의 회고담.
“인기 연예인이 많이 와야 돈 많은 재력가들이 찾는다는 말을 듣고 KBS와 MBC의 간판 여자탤런트에게 골프장 VIP회원권을 제공했다.
국내 최고 방송국의 대모가 우리 골프연습장에 나오자 그를 따르는 탤런트 수십 명도 여의도 골프연습장 대신 강남 골프연습장으로 옮겨 왔다. 이른 새벽시간에는 감사원에 근무하는 국장급 공무원을 비롯해 부장판사, 부장검사,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 군장성 등 유명인사 회원만 수백 명에 달했다.
대통령을 지낸 집안의 자제도 연습장을 찾았고, 호국청년연합회 이승완 회장, 국회의원도 3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골프연습장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우리 골프장은 개장 6개월 만에 유명 VIP들만 찾는 연습장으로 소문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