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를 ‘추락’시킨 카지노 - ㊼김형욱 전 중정부장과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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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력자를 ‘추락’시킨 카지노 - ㊼김형욱 전 중정부장과 카지노

매니저 기자 0 454 0 0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씨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 중의 한 명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대한민국 유력인사 중 드물게 카지노와 인연을 맺었다가 카지노에서 실종된 특별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대한민국 최장수 중앙정부부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하고도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던 그는 박정희 정권을 궁지로 몰아 놓는 미국 연방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과 회고록 출판으로 암살위협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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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장 시절의 김형욱 


장기간 외국생활의 외로움, 암살 위협,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말년 생활은 매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그는 1997년 카지노에 발을 들인 뒤부터 도박중독에 빠져 거액의 재산을 탕진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져 결국 생명을 단축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1970년대 후반, 김경재(15, 16대 국회의원) 전 의원은 김형욱의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그와 자주 접촉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김형욱이 도박을 즐긴 것은 심리적인 불안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성격은 직설적이다. 장기를 두다가 지면 ‘다시 하자!’고 덤벼드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도박장에서 돈을 잃으니까 패배에는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계속해서 도박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주변에서 도박에 맛을 들여 도박으로 자산을 탕진했던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문일석 11년 추적기 ‘김형욱 죽음의 여행’중에서)

카지노에서 도박에 빠진 시간은 일상의 공포와 불안을 벗어날 수 있었기에 그는 말년에 카지노를 즐겨 찾았고 결국에는 카지노에서 실종된 뒤 그의 행적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김형욱 전 부장이 1979년 10월 7일 실종된 이후 11년간 그의 행적을 추적한 언론인 문일석(전 세계일보 기자)씨는 1990년 ‘김형욱 죽음의 여행’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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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1990년 10월호 별책부록으로 발간된 김형욱 죽음의 여행 표지 


이 책에서 문씨는 김형욱의 카지노와 관련된 부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김형욱이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다가 수십만 달러를 날렸던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기사는 워싱톤에서 통신사를 운영하는 문명자 기자가 최초로 보도했다. 1977년 6월 22일 (김형욱이)미 의회 증언을 마친 후였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 일하는 한 한국인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곳의 반정부인사들에게 수소문을 해서 나의 전화번호를 알았다는 거였다. 그 여인은 김형욱이가 도박을 하는데 한 번에 25만 달러씩을 잃었다고 말해 주었다.

이 제보를 받고 생각한 것은 한국 중앙정보부가 시켜서 제보를 하는가라는 의심을 가졌다. 그러나 취재결과 김형욱이 거액을 잃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서 돈을 잃었다는 기사를 쓰게 된 것이다.”(1978년 5월 23일 인터뷰)>

김형욱의 카지노 도박을 최초로 보도한 기자가 한국인 여기자 문영자씨 였다면 또 다른 한국인 기자도 라스베이거스 현장취재를 통해 김형욱의 카지노 도박을 추가로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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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데이레코드지의 김형욱 인터뷰 기사 


<미국 LA 한국신보의 편집국장이었던 손충무도 취재를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갔다. 손충무는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1977년 봄, 김형욱이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증언한 후 영웅이 된 기분으로 한창 신이 나서 미국을 유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 들렀다. 김형욱은 카지노에서 1주일을 묵었다.

김형욱은 밤마다 엄청난 돈을 잃었다. 카지노에 근무하던 한국계 딜러는 미세스 ‘잔 스티븐슨’이었다. 그녀는 서울 워커힐 카지노에서 근무하다 미국인과 결혼하여 도미,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에서 딜러로 취직했으며 남편과 이혼 상태에 있었다.

3일째 카지노에 오는 키가 작은 한국 사람이 매일 밤 몇 십만 달러씩 돈을 잃고 있었다. 카지노 딜러는 절대로 고객과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스티븐슨 여인은 다른 고객들이 쉬는 사이, 김형욱에게 다가가서 ‘그토록 많은 돈을 잃으면 어떻하십니까? 그만 일어서서 돌아가시지요. 이곳은 더 있을 곳이 못 됩니다.’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형욱이 스티븐슨 여인의 뺨을 때리면서 ‘별, 개 같은 X 다 보겠군. 너 같은 X이 무어야, 재수 없게’ 하면서 두 번째 뺨을 때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스티븐슨 여인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한국 국민이 불쌍하게 산단 말이야. 너희같은 놈들 때문에 내가 이민을 와야 했고, 그러니 박정희 정권이 썩었지, 망하고 말테니까 두고 보라구,’하면서 자리에서 나가려하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배에 발길질을 하면서 ‘야, 이 개같은 X, 무엇이 어째~’하고 고함을 쳤다.

그때서야 근처에 있던 김형욱의 보디가드들이 달려왔으며 카지노 지배인과 경찰이 달려왔다. (중략)
당시 김형욱은 1주일간 60만 달러 이상을 탕진했다고 스티븐슨 여인은 증언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손충무는 프레이저 위원회 베이커 조사관 등을 만나 김형욱의 카지노 도박 사실을 알렸다.

결국 프레이저 위원회에서 라스베이거스에 조사관을 파견해 확인한 결과 김형욱이 카지노에서 1주일간 잃은 돈을 자그마치 130만 달러였다. 김형욱은 가지고 간 돈을 모두 탕진하자 카지노에서 40만 달러를 추가로 대출받아 그 돈까지 잃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김형욱은 카지노 도박장에서 거액을 탕진했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여론으로부터 지탄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형욱이 카지노에서 거액의 돈을 잃었다는 내용이 기사화되면서부터 그의 재산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졌다. 더구나 김형욱이 소유한 재산은 한국에서 유출되었다는 점 때문에 교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어 문일석 기자는 김형욱이 뉴욕 케네디공항에서 거액의 달러를 몸에 숨겨 나오다 발각된 사건을 취재한 비화도 ‘김형욱 죽음의 여행’에서 다음과 같이 관련자 진술을 통해 확인시켰다.

<김형욱이 라스베이거스에서 거액을 탕진한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7만 5000달러를 다리에 숨겨 나오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발각된 사건이 발생했다. 1978년 1월 18일이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오는 김형욱의 걸음걸이는 흡사 오리걸음이었다. 다리에 7만 5000달러라는 거액의 미화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관원들에게 발각된 김형욱은 그 자리에서 FBI 뉴욕 사무실로 연행되었다.

이 사건을 최초로 기사화했던 문명자 기자는 말한다.

“뉴욕 케네디공항으로부터 이에 대한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나에게 전화를 해준 사람은 친구의 조카딸이었는데 공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김형욱이 다리에 돈을 숨겨오다 세관원에게 발각되어 FBI에 연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즉시 뉴욕으로 달려가 취재를 했다. 이 사건이 기사화되자 전 외신이 보도를 했다. 이 기사가 나간 후에 김형욱이는 한국중앙정보부의 술책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1978년 5월 23일 인터뷰)>

김형욱의 외화 밀반입 사건은 ‘한국의 어산지’라 불리우며 ‘탐사보도 1인자’로 알려진 안치용씨는 지난 2012년 발간한 <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에서도 심도 있게 다뤘다.

<김형욱은 1978년 1월 18일 오전 9시 55분 뉴욕 존 F 케네디공항에서 미 세관 당국에 의해 전격 체포되었다. 에어프랑스 001편으로 파리를 출발해 뉴욕에 도착하려던 참이었다.

재무부 산하 국세청이 1978년 3월 27일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형욱은 1926년 1월 26일생으로 한국여권을 소지하고 있으며, 여권번호는 348517로 미국 영주권자이다.

김형욱은 미국에 입국하면서 세관원 린다 리에게 휴대품신고서를 제출했다. 입국신고서에 5000달러 이상을 소지하지 않았다고 작성하고 서명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린다 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린다 리는 세관검사를 위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형욱을 주시하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이상했던 것이다. 뚱뚱하고 작은 키의 동양인이 뒤뚱뒤뚱 자신에게 걸어왔다.

린다 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직감했다. 김형욱은 즉각 존 F케네디공항 내 세관 조사실 2호실로 연행됐다. 김형욱에게 다시 얼마를 가지고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3000달러 밖에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몸수색이 시작됐고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김형욱의 양말 속에서 거액이 발견된 것이다. 미화달러와 프랑스 프랑화 등 7만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세관 측은 김형욱에게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음을 알리고 본격 심문에 들어갔다.

그러자 김형욱은 “나는 한국 중앙정부부장을 역임했다. 그 때 일로 해서 지금 한국인이나 미국인들로부터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돈의 출처에 대해 자신이 출국 전에 뉴저지 주 알파인 소재 은행의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찾았고, 파리의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에서 도박해서 딴 돈이라고 설명했다.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는 김형욱이 1979년 10월 7일 실종 전 마지막으로 목격된 바로 그 카지노다.

여행목적은 휴가 겸 쇼핑이며 그의 아들과 함께 스위스 제네바에 가서 스위스 은행계좌 오픈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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