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햇 2023] 블랙햇 참석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간략 안내서
블랙햇이라는 보안 분야 유명 행사만의 몇 가지 특징과 준비해야 할 것
어마어마한 인파, 너무나 미국적인 행사면서도 전 세계 보안인들이 모여 국제화된 콘퍼런스
라스베이거스의 살인적 물가, 교통수단으로 꼭 필요한 우버 앱, 호텔 지하마다 있는 카지노
[보안뉴스 문가용 기자] 한 해 동안 세계 곳곳에서 사이버 보안 행사가 열린다. 8월마다 열리는 블랙햇(Black Hat)은 북반구의 여름 시즌에 어울리는, 조금은 덜 격식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애초에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환락의 도시 중 대표주자로 꼽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기 때문에 딱딱한 정장과 비즈니스 가방이 어울릴 수가 없다. 보안 분야에 몸담고 있다면 블랙햇에 한 번쯤 참여할 기회가 있을 텐데, 첫 방문자들을 위한 간략 블랙햇 참석 가이드를 정리한다.
1. 블랙햇 “USA”라는 걸 잊지 말자 - 1
매년 8월 미국에서 열리는 블랙햇 USA가 가장 대표적인 행사인 것은 맞지만, 사실 블랙햇은 아시아와 유럽에서도 열린다. 그 때마다 행사 이름이 바뀐다. 블랙햇 아시아, 블랙햇 유럽, 블랙햇 USA로 말이다. 아시아와 유럽에는 기자가 아직 참석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블랙햇 USA는 이름 그대로 ‘미국’의 행사다. 국제적인 행사를 표방하지도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국제적인 아젠다를 가져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행사가 자연스럽게 각국 참석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지금도 기자 옆에는 독일 해커들이 모여 있다) 국제적인 느낌이 날 뿐이다.
무슨 뜻일까?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블랙햇을 통해 발표되지만 통역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로 제공되는 각종 강연들을 알아들을 수 없다면 블랙햇을 통해 얻어갈 것이 명성에 비해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기술적인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영어에 능수능란하지 않더라도 화면을 보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햇에서는 보험, 정책, 사회, 정부 등 비기술 분야도 적잖이 다뤄진다. 만약 영어에 자신이 없다면 기술적인 발표들을 선정해 듣는 것이 알맞다. 아니라면 영어로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사람과 팀을 이뤄 같이 참석하는 것을 권한다.
2. 블랙햇 “USA”라는 걸 잊지 말자 - 2
8월의 행사가 블랙햇 “USA”라는 건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화두가 될 사안들이 많이 다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1번 키노트는 인공지능이라는 전 세계적인 이슈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2번 키노트 연사는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사이버 연합 작전과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3번 키노트 연사는 바이든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 사이버보안 전략에 대해 소개하는 등 미국의 입장이나 시각이 주로 언급된다.
올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 몇 년 동안 블랙햇 키노트 스피커들은 “정부가 취약점 정보를 일괄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든가 “공급망 보안과 비대면 서비스”, “보안의 미래” 등을 다뤘지만, 내용 측면에서는 미국의 시각이 많이 반영돼 왔다. 물론 사이버 보안이라는 분야에서 미국이라는 국가가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고, 그래서 후발주자들이 참고할 것이 적지 않지만 연사들이 특별히 ‘국제적 청중’을 염두에 두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3. 다행히 강연 스케줄이 미리 나온다
또 하나, 블랙햇의 가장 중요한 장점 중 하나는 스케줄과 강연 계획이 행사 한참 전에 미리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연 제목과 간략한 소개 내용, 강사 정보를 꼼꼼하게 파악하여 참석 여부를 정하는 것이 좋다.
메인 콘퍼런스 기준으로 블랙햇은 단 이틀 만에 100여 개의 강연이 이뤄지는 행사다. 올해는 90여개였다. 키노트 2~3개만을 제외하면 모두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분신술에 능통하지 않은 이상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들을 수 없다. 듣고 싶은 강좌가 같은 시간대에 겹치는데, 공교롭게 다음 시간대에는 들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미리 동선을 짜야 알찬 블랙햇 참석이 가능하다. 매년 블랙햇 홈페이지에 스케줄표가 미리 발표되고, 그 중에서 브리핑(Briefing)이라고 나오는 것들이 그 해 개설되는 강좌들이니 꼼꼼하게 확인하여 갈 곳을 정하자. 기업이나 기관에서 직원 훈련을 위해 블랙햇 행사 참석을 준비하고 있다면 팀 단위로 참석자들을 결정하여 각 시간대에 참석할 인원들을 지정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4. 어마어마한 인파, 아침 식사와 모닝 커피가 필요하다면 서둘러야
여러 가지를 고려해 블랙햇 참석을 결정해 현장에 도착했다면, 미리 현장 답사를 통해 필요한 시설들의 위치를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특히, 아침 식사와 모닝 커피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는 행사이기 때문에(게다가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간단한 아침을 제공하는 식당과 카페들에 사람들이 몰린다. 줄을 한참 서야 뭘 먹거나 마실 수 있다. 그나마 간단한 식사는 블랙햇 행사 주최 측이 제공하기 때문에 그 쪽을 이용하면 되지만, 커피는 일찍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아침만 넘기면 강연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행사 주최 측에서 복도에 커피와 차를 준비해 준다. 가서 원하는 대로 따라 마시면 된다. 물론 얼음이 들어가거나 우유로 재주를 부린 커피는 없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통일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아침에 커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거나 서둘러 나오는 것보다 이 시간을 기다리는 게 나을 수 있다. 8월에 무슨 따뜻한 아메리카노냐, 고 물을 수 있는데, 올해 라스베이거스 기온이 43~47도라 내부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행사장 안은 싸늘하기 때문에 의외로 잘 어울린다.
5. 우버 앱을 사용할 줄 알면 편하다
기자가 느끼기에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우버였다. 우버 앱을 스마트폰에 설치해 해외에서도 결제가 되는 신용카드와 연동시켜두지 않은 채 무방비로 라스베이거스 사막 한 가운데 뚝 떨어지면 행사장과 숙소를 오가는 것도 어렵다. 택시가 없지 않지만 압도적으로 우버 차량이 많기 때문에 한 대 잡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고, 비용도 좀 더 비싼 편이다. 올해 기준 블랙햇과 데프콘 행사장 근처로 모노레일이 지나가기 때문에 이걸 이용해도 되지만 역으로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숙소가 어디냐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일행 중에 우버 사용자 한 명 정도 있으면 삶이 쉬워지는 느낌이 든다.
우버를 통해 차량 픽업을 신청하면 운전자 화면에 신청자의 이름이 뜬다. 우버 앱에 자기 이름을 한글로 설정해 두면 어떻게 될까? 운전자 화면에도 신청자의 이름이 한글로 뜬다.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우버 운전자를 만나지 않는 이상 해독 불가능한 언어가 되고, 이 때문에 픽업 장소에 도착해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다소 불편해질 수 있다. 물론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영어 이름으로 설정해 두는 것이 낫다. 한 우버 운전자는 하루 운행 후 결산할 때 한글이 뜨면 알아보기가 어렵고 실수할 수 있어 영어로 바꿔줄 수 있느냐고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편차가 있겠지만 음식이 대체로 짠 편이다. 물이 많이 먹힌다. 숙소에 물을 충분히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또 물가가 상당히 높다. 관광지임을 감안해도 무서울 정도다. 서너 사람이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식사를 해도 살인적인 팁까지 더해 20~30만원 돈이 쉽게 나온다. 한 우버 운전자에게 관광지라서 여기가 유독 그런 거냐고 물었더니 코로나 이후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현지인들도 너무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중앙은행에서 물가를 낮추기 위해 금리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음에도 고물가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이라는 것도 출장 준비 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심심찮게 말을 건다. 마주오는 사람이 난데 없이 하이파이브를 신청하기도 하고, 뒤에서 가방이 멋지다고 말을 걸더니(데프콘 행사장에서 등록자들에게 무료로 준 보자기 형태의 가방...) 자기는 이틀 동안 휴가를 받아 미식축구 경기 보러 간다고 자랑을 하기도 한다. 누가 봐도 관광객 같은 기자에게 화장실 어디냐고 묻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모노레일 창밖 풍경을 녹화하는 기자의 핸드폰을 같이 들여다보면서 하와이 산불 사태를 걱정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스몰토크’가 언제 어디서나 시작될 수 있으니 당황하지 말자.